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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독서노트]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1)

마농.. 2022. 8. 4. 10:49
   가격 폭리에 대한 분노가 단순히 비이성적인 분노는 아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도덕적 주장이다. 이익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폭리를 얻는다고 생각되어 느껴지는 특별한 종류의 분노, 즉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다.
 
  그런데 주목할 중요할 점은, 가격폭리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복지와 자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논쟁은 미덕에 관한, 즉 좋은 사회의 기반이 되는 태도와 기질, 인격을 길러 내는 일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덕과 관련 짓는 논변에는 어떤 사람들, 심지어 가격폭리방지법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불편해한다. 그 이유는 복지와 자유를 앞세우는 주장에 비해 판단의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 경제 회복을 빠르게 하는지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는지 여부를 묻는 데는 사람들의 선호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질문은 누구나 적은 수입보다는 많은 수입을 선호한다고 가정할 뿐이며, 그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심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강요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정말로 선택의 자유가 없었는지를 묻는 것에는 그들의 선택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지 않는다. 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했는지, 혹은 강제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웠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반면, 미덕 논변은 탐욕은 악덕이며 주 정부가 나서서 억제해야 한다는 판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미덕이고 무엇이 악덕인지 누가 판단한단 말인가? 다원화된 사회의 시민은 그러한 판단에 반대하지 않는가? 또한 미덕에 대한 판단을 법으로 부과하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니겠는가? 이러한 우려에 직면하여, 많은 사람들은 미덕과 악덕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중립을 견지해야 하며, 또한 선한 태도를 배양하려 하거나 악한 태도르 억제하려는 노력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가격 폭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잘 살펴보면 이중적임을 알 수 있다. 자격 없는 사람이 이득을 얻으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한 처지를 이용하는 탐욕에 대해서는 포상이 아니라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법을 통해 미덕과 악덕을 심판하려 할 때는 우려를 나타낸다.

  이런 딜레마는 정치 철학의 중요한 문제 하나를 드러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에게 미덕을 장려해야 할까, 아니면 법이 미덕을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들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할까?

(중략)

   이처럼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둘의 장단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우선 이런 식의 이분법적 대조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정치를 움직이는 정의에 관한 주장들(철학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견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내세우는 주장을 보면 최소한 겉으로는 경제적 풍요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명예와 포상을 누릴 미덕이 무엇이며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할 생활 방식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자 하는 일련의 또 다른 신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때때로 서로 경쟁한다. 즉 풍요와 자유를 굳건히 지지하면서도, 정의에 있어서 판단의 요소를 개입시키고자 하는 한 가닥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정의에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미덕도 포함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뿌리가 깊다. 정의에 대한 고민은 불가피하게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역시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사고의 자연스러움은 강력하다.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반면 이 자연스러움을 '거스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 새로운 자연스러움을 쟁취하고자 할 때 어려움이 따른다.

 

자유는 그 상태로 정의로워 보이지만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선택이 정의롭기 위해선 마땅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자유를 제한해야 할 만큼의 더 큰 미덕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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